충청북도단양군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 김범우, 단양 순교 주장 나와
AI 요약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의 순교지는 경남 밀양이 아닌 단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김범우 단장유배설'의 허점을 지적하며, 문헌 기록과 김범우가 받은 형벌, 당시 시대적 상황 등을 근거로 단양 순교설을 주장했다. 단양성당 여진천 주임신부는 단양 지역과 관련된 순교자들을 소개하며 성역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로 알려진 김범우(1751~1786) 토마스는 단양으로 귀양왔다가 순교한 것이 문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타당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최근 단양에서 열린 '을사추조적발 사건 24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경남 밀양의 '단장 유배설'이 갖고 있는 허점을 지적했다.
을사추조적발사건은 '명례방사건'으로도 불린다. 1785년 을사년에 김범우의 집이 있는 남부 명례방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천주교회 설립 이후 신자들이 체포된 첫 번째 사건 인 데다 첫 순교자를 탄행시켰다는데 교회사적으로 중요하다.
1785년 3월 추조(형조)에서 김범우, 이벽, 이승훈, 정약전 삼형제 등이 적발됐으나 모두 훈방되고 중인(역관) 신분이던 김범우만 옥살이를 하고 도배형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천주교교에서 '김범우 단장유배설'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후손들이 제시한 호구단자와 편지, 일부 성직자 등의 주장과 묘지발견 주장 등 때문이다.
그러나 정 교수에 따르면, 당시 김범우의 죄는 천주교 집회의 장소 제공자로 십여일간 옥에 갖혀 갖은 형벌을 당하다가 단양으로 귀양왔는데 길어야 3년을 넘길 수 없는 도배형을 받았다.
당시 천주교가 국가적으로 박해를 받던 시기 이전으로 김범우는 풍속사범에 속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사학징의' 등 문헌과 기록에도 “김범우는 병오년(1786)에 삿된 학문의 일로 단양에 정배되었다가 죽었습니다”라고 나온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단장유배설'의 근거인 호구단자(일종의 호적 등본)를 통해 오류를 설명했다.
즉, 단장면이라는 행정 지명이 처음 등장한 것이 김범우 사후 84년 뒤인 1870년으로 유배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단양성당 여진천 주임신부는 1827년 정해박해부터 기해1839)ㆍ병인(1866~1873)박해까지 박경화 바오로, 박사의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 등 18명의 순교자가 단양과 연관됐다고 소개했다.
방상근 박사는 을사추조적발과 김범우의 역할이란 논문을 통해 당시 김범우는 이승훈, 이벽, 권일신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여진천 신부는 “김범우 순교자가 형벌을 받은 곳이 단성면 옛 단양성당 자리이며 단양 곳곳에 순교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얼룩져 있다”며 “생명과 인권, 정의와 평화를 되새기는 성역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최근 단양에서 열린 '을사추조적발 사건 24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경남 밀양의 '단장 유배설'이 갖고 있는 허점을 지적했다.
을사추조적발사건은 '명례방사건'으로도 불린다. 1785년 을사년에 김범우의 집이 있는 남부 명례방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천주교회 설립 이후 신자들이 체포된 첫 번째 사건 인 데다 첫 순교자를 탄행시켰다는데 교회사적으로 중요하다.
1785년 3월 추조(형조)에서 김범우, 이벽, 이승훈, 정약전 삼형제 등이 적발됐으나 모두 훈방되고 중인(역관) 신분이던 김범우만 옥살이를 하고 도배형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천주교교에서 '김범우 단장유배설'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후손들이 제시한 호구단자와 편지, 일부 성직자 등의 주장과 묘지발견 주장 등 때문이다.
그러나 정 교수에 따르면, 당시 김범우의 죄는 천주교 집회의 장소 제공자로 십여일간 옥에 갖혀 갖은 형벌을 당하다가 단양으로 귀양왔는데 길어야 3년을 넘길 수 없는 도배형을 받았다.
당시 천주교가 국가적으로 박해를 받던 시기 이전으로 김범우는 풍속사범에 속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사학징의' 등 문헌과 기록에도 “김범우는 병오년(1786)에 삿된 학문의 일로 단양에 정배되었다가 죽었습니다”라고 나온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단장유배설'의 근거인 호구단자(일종의 호적 등본)를 통해 오류를 설명했다.
즉, 단장면이라는 행정 지명이 처음 등장한 것이 김범우 사후 84년 뒤인 1870년으로 유배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단양성당 여진천 주임신부는 1827년 정해박해부터 기해1839)ㆍ병인(1866~1873)박해까지 박경화 바오로, 박사의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 등 18명의 순교자가 단양과 연관됐다고 소개했다.
방상근 박사는 을사추조적발과 김범우의 역할이란 논문을 통해 당시 김범우는 이승훈, 이벽, 권일신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여진천 신부는 “김범우 순교자가 형벌을 받은 곳이 단성면 옛 단양성당 자리이며 단양 곳곳에 순교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얼룩져 있다”며 “생명과 인권, 정의와 평화를 되새기는 성역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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