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화천군
최문순 화천군수, 12년 군정 마무리… "군민과의 약속 지키기 위해 바삐 생활"

바쁘신 와중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기관·사회 단체장님과 군부대 관계자님들, 그리고 공직자 가족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오늘 민선 6·7·8기, 12년 동안 수행해 온 군수의 자리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화천군민으로 돌아갑니다.
돌이켜보면, 이 자리까지 참 멀리도 왔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1954년, 하남면 원천리의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화천의 산과 강과 함께 자랐습니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 월납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빼앗기고 쫓겨나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북한강변에 앉아 목청이 터져라 세상을 원망하면서,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후 흰 쌀밥이라도 먹고 싶어 선택한 것이 공무원이었습니다.
1977년 10월,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되며 시작된 공무원 생활이 어느덧 50년 세월 동안 이어졌고, 드디어 오늘 3선 군수로서의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민선 6기부터 시작된 12년 간의 군수직 수행 기간은 저에게 영광의 시간이기 이전에, 우리 군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바삐 생활한 시간이었습니다.
무거운 책임 앞에서 수없이 고민했고, 때로는 외롭고 말할 수 없이 두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수로 취임한 순간부터의 저의 삶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군민들의 눈물, 아이들의 웃음소리, 농민들의 한숨,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까지, 모든 것이 제 책임이었고, 제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군민 여러분의 믿음 이었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준 동료 공직자들과 함께 했었기에 저는 끝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지난 12년간 변하지 않았던 화천군정의 최우선 정책목표는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만들기’ 였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를 거쳐,관내 모든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 지원, 매월 거주비 최대 60만원 지원, 세계 100대 대학 유학생 등록금 지원과 거주비 2,400만원 한도 지원 등 파격적인 정책들을 실제로 구현해 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포퓰리즘 아니냐? 정말로 가능하겠느냐? 는 주위의 수많은 걱정, 그리고 비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군민 한분 한분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일념,
그리고 누구나 돈이 없어도 마음껏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만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우리 화천군 공무원 동료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앞으로 힘차게 전진했습니다.
성공적인 민선 6기를 뒤로 하고 맞이한 민선 7기는 우리에게 6.25 전쟁 이후 가장 큰 위기가 닥쳤던 시기였습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여파에 화천의 모든 것이 멈췄고, 우리 군민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담긴 화천산천어축제도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라는 시련으로 수많은 양돈농가가 입술을 깨물며 자식 같은 돼지를 땅에 묻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가족과 다름없었던 사내면 육군 27사단이 국방 개혁이라는 명목 아래 해체되었고, 지역 공동체의 근간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화천군민의 단합된 힘, 하나 된 마음으로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일상을 되찾았으며,
3년 만에 재개된 2023 화천산천어축제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를 넘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글로벌 겨울 축제로 하늘 높이 비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민선 8기. 우리의 노력은 하나둘 결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화천의 교육과 돌봄 정책은 더 이상 ‘실험’이 아닌, 대한민국 모든 지자체가 닮고 싶어 하는 ‘표준’이 되었고, 우리 화천의 아이들이 뉴욕대, 워싱턴대, 중국 푸단대, 영국 런던대 등 세계적 명문대학에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20년 후, 우리 화천군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후손들은 우리의 장학사업 덕분에 의사와 변호사, 대학교수로 성장해 조극 발전의 디딤돌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지자체 직영 온종일 돌봄 시설인 화천커뮤니티센터가 개관해 젊은 맞벌이 부부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파크골프 사업의 성공으로 화천군은‘대한민국 파크골프의 수도’라는 확고부동한 위치에 올랐습니다.
신혼부부와 어르신들을 위한 보금자리 주택이 완공됐고, 수많은 공공임대주택 건립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화천군 공무원들의 철저한 준비로 지난 6월 11일, 우리 군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에 선정되어 금년 8월부터 모든 군민 1인당 매월 15만원씩 지급받게 됨으로써,가계생활 안정과 지역경제 회복의 획기적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수영장을 꼭 지어 달라던 한 초등학교 여학생의 모습,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지 말라며 직접 털실로 짠 샛노란 목도리를 목에 걸어주시던 어르신, 세계적 명문대에 입학해 감사하다며 찾아온 수많은 학생들,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고 주저앉아 터지는 울음을 참던 한 어르신의 떨리는 입술,
그리고 선거법 위반 혐의로 갖은 고초를 겪고, 끝내 무죄를 받아낸 순간 저를 믿어주시고, 함께 기뻐해 주셨던 고마운 분들,
화천군 덕분에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다며 빨간 내복을 사들고 찾아온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후손 장학생.
췌장암 수술 한달여 만에 산천어축제장에 나가 얼음판을 살필 때 쓰러질까 걱정되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제 옆을 지켜준 동료 공직자들,
매년 11월, 떡볶이 토크쇼 때마다 저에게 소망 편지를 보내던 저소득층 드림스타트와 아동복지센터의 사랑스러운 아이들까지…
군수는 행정 서류에 사인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을 가슴으로 품고, 현장에서 돌봐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아름다웠던 우리의 동행, 함께 울고 웃었던 값진 추억은 제 심장이 멈추는 날까지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저의 가족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군민 여러분, 그리고 동료 공직자 여러분!
함께해서 행복했고, 든든했습니다.
그동안 빚진 행복은 앞으로 천천히 갚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모든 분의 가정에 건강과 화목, 기쁨과 희망이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민선 6·7·8기, 12년 동안 수행해 온 군수의 자리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화천군민으로 돌아갑니다.
돌이켜보면, 이 자리까지 참 멀리도 왔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1954년, 하남면 원천리의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화천의 산과 강과 함께 자랐습니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 월납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빼앗기고 쫓겨나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북한강변에 앉아 목청이 터져라 세상을 원망하면서,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후 흰 쌀밥이라도 먹고 싶어 선택한 것이 공무원이었습니다.
1977년 10월,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되며 시작된 공무원 생활이 어느덧 50년 세월 동안 이어졌고, 드디어 오늘 3선 군수로서의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민선 6기부터 시작된 12년 간의 군수직 수행 기간은 저에게 영광의 시간이기 이전에, 우리 군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바삐 생활한 시간이었습니다.
무거운 책임 앞에서 수없이 고민했고, 때로는 외롭고 말할 수 없이 두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수로 취임한 순간부터의 저의 삶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군민들의 눈물, 아이들의 웃음소리, 농민들의 한숨,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까지, 모든 것이 제 책임이었고, 제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군민 여러분의 믿음 이었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준 동료 공직자들과 함께 했었기에 저는 끝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지난 12년간 변하지 않았던 화천군정의 최우선 정책목표는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만들기’ 였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를 거쳐,관내 모든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 지원, 매월 거주비 최대 60만원 지원, 세계 100대 대학 유학생 등록금 지원과 거주비 2,400만원 한도 지원 등 파격적인 정책들을 실제로 구현해 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포퓰리즘 아니냐? 정말로 가능하겠느냐? 는 주위의 수많은 걱정, 그리고 비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군민 한분 한분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일념,
그리고 누구나 돈이 없어도 마음껏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만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우리 화천군 공무원 동료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앞으로 힘차게 전진했습니다.
성공적인 민선 6기를 뒤로 하고 맞이한 민선 7기는 우리에게 6.25 전쟁 이후 가장 큰 위기가 닥쳤던 시기였습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여파에 화천의 모든 것이 멈췄고, 우리 군민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담긴 화천산천어축제도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라는 시련으로 수많은 양돈농가가 입술을 깨물며 자식 같은 돼지를 땅에 묻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가족과 다름없었던 사내면 육군 27사단이 국방 개혁이라는 명목 아래 해체되었고, 지역 공동체의 근간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화천군민의 단합된 힘, 하나 된 마음으로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일상을 되찾았으며,
3년 만에 재개된 2023 화천산천어축제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를 넘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글로벌 겨울 축제로 하늘 높이 비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민선 8기. 우리의 노력은 하나둘 결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화천의 교육과 돌봄 정책은 더 이상 ‘실험’이 아닌, 대한민국 모든 지자체가 닮고 싶어 하는 ‘표준’이 되었고, 우리 화천의 아이들이 뉴욕대, 워싱턴대, 중국 푸단대, 영국 런던대 등 세계적 명문대학에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20년 후, 우리 화천군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후손들은 우리의 장학사업 덕분에 의사와 변호사, 대학교수로 성장해 조극 발전의 디딤돌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지자체 직영 온종일 돌봄 시설인 화천커뮤니티센터가 개관해 젊은 맞벌이 부부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파크골프 사업의 성공으로 화천군은‘대한민국 파크골프의 수도’라는 확고부동한 위치에 올랐습니다.
신혼부부와 어르신들을 위한 보금자리 주택이 완공됐고, 수많은 공공임대주택 건립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화천군 공무원들의 철저한 준비로 지난 6월 11일, 우리 군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에 선정되어 금년 8월부터 모든 군민 1인당 매월 15만원씩 지급받게 됨으로써,가계생활 안정과 지역경제 회복의 획기적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수영장을 꼭 지어 달라던 한 초등학교 여학생의 모습,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지 말라며 직접 털실로 짠 샛노란 목도리를 목에 걸어주시던 어르신, 세계적 명문대에 입학해 감사하다며 찾아온 수많은 학생들,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고 주저앉아 터지는 울음을 참던 한 어르신의 떨리는 입술,
그리고 선거법 위반 혐의로 갖은 고초를 겪고, 끝내 무죄를 받아낸 순간 저를 믿어주시고, 함께 기뻐해 주셨던 고마운 분들,
화천군 덕분에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다며 빨간 내복을 사들고 찾아온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후손 장학생.
췌장암 수술 한달여 만에 산천어축제장에 나가 얼음판을 살필 때 쓰러질까 걱정되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제 옆을 지켜준 동료 공직자들,
매년 11월, 떡볶이 토크쇼 때마다 저에게 소망 편지를 보내던 저소득층 드림스타트와 아동복지센터의 사랑스러운 아이들까지…
군수는 행정 서류에 사인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을 가슴으로 품고, 현장에서 돌봐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아름다웠던 우리의 동행, 함께 울고 웃었던 값진 추억은 제 심장이 멈추는 날까지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저의 가족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군민 여러분, 그리고 동료 공직자 여러분!
함께해서 행복했고, 든든했습니다.
그동안 빚진 행복은 앞으로 천천히 갚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모든 분의 가정에 건강과 화목, 기쁨과 희망이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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